콜라보레이션을 안 하면 뒤쳐진다고 느끼기 좋은 시대입니다. 밀가루를 만들어 베이커리, 식당 등에 납품하던 대한제분은 ‘곰표’ 브랜드를 리뉴얼하고 편의점과 손을 잡아 수제 맥주를 선보였습니다. 한국에서 지금 가장 인기 있는 맥주 ‘곰표 밀맥주’는 치솟는 인기에 작년 대비 생산량을 15배 늘려 월 300만 개를 공급하고 있지만 냉장고를 채우면 바로 사라지는 ‘품절템’이 되었습니다. 단골들이 “곰표 맥주 입고되면 연락 좀 달라”고 부탁을 하고, 창고에 두었다 손님이 찾을 때만 꺼낼 만큼 ‘없어서 못 파는’ 제품, ‘팔리는’ 브랜드가 된 곰표. 4월 30일,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를 통틀어 하루 매출 1위에 오르며 30년간 편의점 맥주 시장에서 대형 제조사 제품을 단독 판매 상품이 제친 첫 번째 사례가 되었습니다.
[ 소비재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 ]
2021년 5월 국내 맥주 소매 유통 시장에서 생긴 이변은 사실 대한제분이 보여준 행보를 복기할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대한제분은 밀가루 시장에서 경쟁하는 CJ그룹 계열사인 CGV와 손을 잡고 서울 왕십리점 리뉴얼 기념으로 20kg 밀가루 포대에 담은 팝콘을 판매했습니다. CU에서 곰표 오리지널 팝콘을 선보이기 전에 이미 베타 테스트를 거친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고객 반응을 확인했죠. 2018년 곰표 맨투맨을 출시한 이후 올해는 남성 패션 업체 4XR과 함께 곰표 패딩을 출시했고 한정 판매 상품이 대박을 내면서 대한제분 곰표를 브랜드 굿즈 트렌드이자 콜라보레이션 성공 사례로 만들었습니다. 곰표 맥주가 대박을 내기 전 대한제분은 2016년부터 기업 이미지(CI), 브랜드 이미지(BI)를 재정의하고 MZ세대가 기억할 만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방식을 고민했습니다.
대한제분이 콜라보레이션에 성공한 이유는 한 마디로 ‘업의 변화’부터 진지하게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대한제분 창업자 2세 이건영 회장은 2016년 취임하면서 CI, BI 부터 변경했습니다. MZ세대에게 외면받는 ‘낯선 브랜드’가 되면 시장에서 승산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변화가 B2B기업에서 B2C 기업으로 확장하기 위한 비즈니스 의사 결정이었고 이를 위해 카페 ‘아티제’, 카페 ‘포제’, 반려동물 사료기업 ‘우리’를 운영하면서 펫푸드 기업 대산앤컴퍼니도 인수했습니다. 자체 온라인 쇼핑몰 ‘곰표 베이커리하우스’를 오픈해서 콜라보레이션이 아닌 자체 고객 접점을 확보했고 자체 굿즈를 판매하는 채널로 활용했습니다. TV 광고 한 번 하지 않고 편의점에서 없어서 못 파는 맥주가 된 ‘곰표’ 브랜드 파워는 적어도 5년 간의 노력이 만든 성과입니다. 최근에는 무형의 굿즈, 타이포래라피까지 접점을 늘리며 ‘곰표체’를 출시했습니다.
곰표가 놀라울 만큼 인기를 얻자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콜라보레이션으로 인기를 얻는 브랜드를 지켜보고 특정 상품에 브랜드이미지가 갇혀 있는 소비재 브랜드들이 이를 표면적으로만 모방하면서 안전에 대한 위험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구두약 브랜드가 동일한 패키지에 초콜릿을 출시하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초콜릿인 줄 알고 구두약 케이스를 열고 맛을 볼 수 있습니다. 홈플러스에서 단독 판매하는 ‘서울우유 콜라보 바디워시’는 우유 패키지와 동일한 로고와 서체, 색상을 적용해 최대한 유사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서울우유 판매를 높이기 위해 우유 진열대 앞에 두고 서울우유와 함께 구매하면 1,000원을 할인해주는 프로모션도 진행했습니다. 우유와 바디워시, 구두약과 초콜릿. 딱풀 모양을 한 사탕과 유성매직 브랜드를 입힌 사이다, 건전지 브랜드가 만든 계란과자까지. 이색 콜라보레이션은 브랜드, 마케터의 욕심과 펀슈머 마케팅 현상이 결합돼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습니다. 곰처럼 느리더라도 묵묵하게 걸어가야 성공할 수 있는 콜라보레이션을 겉으로만 보고 따라 하면 소비재 브랜드는 오히려 브랜드 평판을 훼손하고 소비자 안전 이슈에 위기 대응을 해야 하는 리스크를 떠안게 됩니다.
[ 다들 식음료 콜라보할 때 쓴맛으로 안전을 이야기하는 듀라셀 ]
국내에서 어린이가 동전 모양의 건전지를 삼키는 사고는 매년 60 건 정도 발생합니다. 듀라셀은 건전지에 무독성 쓴맛을 코팅해 아이가 건전지를 먹으면 뱉어낼 수 있도록 사용자 경험을 유도하는 아이디어를 적용했습니다. 로케트가 계란과자와 캔디, 젤리를 만들 때 쓴맛 코팅한 건전지로 상품을 업그레이드한 듀라셀. 패키지는 어른이 가위로 포장을 제거해야만 사용할 수 있도록 ‘더 어렵게’ 잘 만들었습니다. 콜라보레이션을 할 때 욕심이 나더라도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습니다. 안전, 생명, 식품.
콜라보레이션은 시너지를 내기 위해 두 개 이상의 기업 혹은 브랜드가 기존의 자산을 활용해 기존에 없던 것을 내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하는 점은 부정적인 인식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없는지 사전에 철저하게 검증하는 건데요. 비식품 브랜드가 식품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해서 제품을 내놓는 ‘말표’, ‘번개표’ 등의 경우에는 기존 상품을 식품처럼 생각하고 섭취할 가능성이 없는지,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기존 상품에 어떤 변화를 주어야 할지 계획을 만들어야 합니다. 비식품 브랜드의 식품 출시는 이런 점에서 기업 차원의 변화 없이 ‘간헐적 보여주기’로 그치기 쉽습니다. ICT 플랫폼 또한 소비재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고객 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포티파이와 핀터레스트 사례를 통해 서비스, 플랫폼이 할 수 있는 똑똑한 콜라보레이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 ICT 플랫폼의 콜라보레이션 특징 ]
1. 스포티파이
스포티파이는 ICT 플랫폼 중 가장 똑똑하게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스트리밍하는 세계 최대의 플랫폼이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철학은 “음악만 있으면 모든 공간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에 기인합니다. 예컨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신나게 듣다가 우버로 호출한 차량에 눈 앞에 멈춰 섰다고 생각해보세요. 고객은 음악을 계속 들으며 이동하고 싶을 겁니다. 방해받는 걸 좋아하는 사용자는 없으니까요. 문제는 우버 드라이버가 크게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입니다. 노이즈 캔슬링이 되지 않는 이어폰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즐거운 순간은 소음으로 단절되고 매끄럽지 않은 고객 경험은 우버에 부정적인 인식으로 남게 되죠. 우버와 스포티파이는 고객이 듣던 음악을 호출한 차량에서 연속해서 들을 수 있도록 협업했습니다. 우버와 스포티파이 모두 이동하는 과정을 고객 중심으로 맞추기 위해 노력한 겁니다. ICT 플랫폼 콜라보레이션은 ‘데이터가 끊김 없이 이어지도록 협업한다’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제3의 공간’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공간을 통해 고객 경험을 높이기 위한 여러 전략이 녹아 있는 플랫폼입니다. 스타벅스는 매장에서 재생할 수 있는 음악도 고객 경험을 형성하는데 핵심적인 요인으로 판단하고 모든 매장에서 재생할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를 통합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스타벅스가 과감하게 스포티파이와 브랜드 강화를 목적으로 콜라보레이션을 했다는 점은 스포티파이 고객들에게 스타벅스 앱을 알리고 설치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고객 접점을 확대한다는 목적이었죠. 스타벅스 직원들은 스포티파이에서 제공하는 프리미엄 요금제르 통해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큐레이션하고 플레이리스트를 자신이 일하는 매장에서 배경음악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 플레이리스트는 스포티파이가 아닌 스타벅스 모바일 앱을 통해 접근할 수 있고 스타벅스를 찾는 고객들은 “스타벅스에서 나오는 노래 모음”을 스타벅스 앱을 통해 확인하고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거죠. 스포티파이로서는 스타벅스 파트너들을 새로운 스포티파이 고객으로 유입시키는 동시에 스포티파이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이 더 많은 청취자들을 만날 수 있는 오프라인 플랫폼을 확보하는 의미 있는 콜라보레이션 사례입니다.
2. 핀터레스트
핀터레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와 협업하면서 이미지 큐레이션 서비스가 패션 브랜드, 더 나아가 오프라인 접점을 가진 브랜드와 공동 브랜딩 캠페인을 할 수 있는 똑똑한 사례를 만들었습니다. 핀터레스트는 디자이너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이미지 기반 검색이나 무드보드 제작 등 이미지 큐레이션을 위해 활용하는 플랫폼인데요. 리바이스는 이 플랫폼에서 ‘Styled by Levi’s’라는 이름으로 사용자 취향, 선호에 맞춰 리바이스 제품으로 스타일링을 제공하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핀터레스트에 접속한 사용자는 선호하는 쇼핑 카테고리와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미지 5개를 선택하고 고객 데이터에 기반한 리바이스 제품과 코디 큐레이션을 제공받습니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사용자 니즈에 맞춰 자사 제품을 맞춤형으로 제공하고 매장 방문 또는 자사 D2C 채널을 통해 구매 전환을 유도하는 방식은 무드보드 중심으로 핀터레스트를 사용하는 수백만 명의 사용자들에게 주효했습니다.
ICT 플랫폼은 콜라보레이션은 데이터를 확보하거나 고객 접점을 늘릴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온라인 플랫폼만 보유한 스포티파이는 우버를 통해 이동하는 공간을, 스타벅스를 통해 전 세계 가장 강력한 브랜드 공간을 자사 서비스 접점으로 만들었습니다. 리바이스는 자사 D2C 온라인 채널이 있었지만 이미지 기반 검색과 큐레이션을 위해 수백만 명이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핀터레스트를 똑똑하게 활용했습니다. 고객들에게 가장 적은 질문만 던지고 큐레이션 데이터를 제공한 후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통해 더 나은 큐레이션을 만들고 상품 선호 데이터를 확보하는 동시에 판매 접점에서는 불가능했던 브랜드-고객 일대일 접점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