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의 한 백화점에서 리바이스 코너를 조사할 때였다. 우리가 진행한 조사의 목적은 20대와 30대 남성 고객들을 유인할 수 있도록 매장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젊은 사내가 청바지 코너로 이어진 통로를 걸어가는 장면이 비디오에 담겼다. 아내와 동행한 그는 유모차를 밀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청바지 코너에 도착했다. 그는 벽에 설치된 진열대를 보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그와 청바지 코너 사이에 스탠드식 의류 진열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탓에 그 사이로 유모차가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는 잠시 고심하는 듯했다. 아기와 아내를 통로에 남겨두고 청바지를 사러 갈까? 결국 그는 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그는 청바지 코너를 그냥 지나쳤다. 이렇듯 유모차의 진입을 막고 있는 매장들이 허다하다. 그리고 이것은 곧 많은 20대 및 30대 고객들을 매장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자녀들을 위해 옷을 사는 아버지는 드물었지만, 요즘에는 아동복 코너에서 쇼핑하는 아버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의류 제조업체는 이런 추세를 아직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모든 의복들 중에 아동복 사이즈가 가장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만약 아동복 사이즈가 아이들의 연령과 정확히 일치하는 시절이 찾아온다면 아이들에게 옷을 입히는 데에 있어 남자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자녀에게 몹시 관대한 아빠들이 아들을 위해서 멋진 벨벳 재킷을, 딸을 위해서 작은 파티 드레스를 구매하려 들지 않을까?
토요일 오전이면 아빠들은 우유병, 비스킷, 기저귀, 베이비파우더, 연고, 손수건 같은 다양한 아기용품들을 챙긴다. 그는 그것을 어디에 넣을까? 아내가 갖고 다니는 커다란 분홍색 나이론 가방은 분명 아닐 것이다. 주위에 있는 가방들이 모두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평범한 기저귀 가방도 어머니용으로 만들어져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평범한 기저귀 가방도 어머니용으로 만들어져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이른바 스위스 아미 기저귀 가방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검은색 가죽 기저귀 가방이 딸려 있는 할리 데이비슨 브랜드의 유모차를 모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처럼 모든 유아용품들은 새롭게 개발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입지가 확고했던 다른 분야에도 남성을 적응시킬 수 있지만, 거기에는 남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적극성이 부족한 남자들의 특성을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매장들의 바닥과 벽, 그리고 거기에 걸린 모든 것들이 무모하게 침입한 남자들에게 “당장 여기서 꺼져! 이곳은 당신이 있을 곳이 아니야!”라고 소리치고 있다. 내 사무실 근처에 접시와 유리잔 같은 제품을 파는 매장이 있다. 이 매장 안으로 들어갈 때 내게 놀라움을 주는 것은 낯선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이다. 반면 블루밍데일의 로열 덜턴(Royal Doulton, 도자기 및 식기 브랜드) 코너는 항상 내게 두려운 존재였던 할머니의 식당으로 다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남자들이 원할 경우 즐거운 마음으로 쇼핑할 수 있는 장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오늘날에는 과거와 달리 건강 및 몸단장에 관련된 제품들이 많이 팔리고 있다. 그러나 그 제품들이 팔리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대다수의 남자들이 절대 탐욕스러운 구매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제품들을 판매하는 잡화점 체인이나 슈퍼마켓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여성적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남녀 공용으로 사용 가능한 샴푸나 비누 같은 제품들이 죄다 여성 취향으로 포장되고 이름 붙여져 있다. 그러나 보니 면도 크림과 모발 연고, 탈취제처럼 특별히 남성을 위해 만들어진 제품들조차 향기로운 여성용품 코너 사이에 끼여 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남성을 위한 공간은 아예 배제된 셈이다. 그러니 남자들이 어떻게 그런 제품들을 쇼핑할 수 있겠는가?
전통적으로 미용 산업은 항상 고급품 분야로 이동하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예를 들어 에스티로더와 로레알 같은 제품들은 나이트 크림을 바르는 자그마한 행운에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식으로 여성을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남성 시장에서는 이것이 바람직한 접근 방식이 아니다. 남성용 스킨 제품이 성공을 거두려면 배치와 언어와 포장에서 차별화된 다른 선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외에서 작업하는 남자들(경찰관, 건설 인부, 케이블 TV와 전화선 가설 인부, 도로공사 인부)에게 피부 보습제와 자외선 방지 로션은 거대한 미개척 시장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들이 블러셔나 주름살 제거 크림을 사기 위해 통로를 배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성이나 아동을 주대상으로 하는 제품을 구입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건강 미용 코너를 거닐다 보면, 남자들은 아예 피부를 갖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피부를 가지고 있으며, 그 피부는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볼 수 있는 사례로, 할리 데이비슨 판매 대리점이 있다. 그곳에서는 자사 생산 스킨케어 제품에 자신이 원하는 명칭을 붙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가치와 함께 상징성 있는 명칭도 그 제품에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품은 손에 기름이 묻지 않게 해주는 굽(Goop)이나 소나무 수액을 없애주는 라바 비누(Lava soap)처럼 남자들에게 적합한 물건으로 시장에 출시되어야 한다. 할리 데이비슨이 앞장서면 후발 주자로 존 디어(John Deere)와 캐터필러(Caterpilar) 같은 회사들이 그 뒤를 따라갈 것이다.
화장품 회사인 크리니크는 남성용 면도 및 스킨 제품 생산을 위한 시설을 완벽히 갖추고 있다. 그러나 뉴욕 시에 위치한 버그도프굿맨 백화점에서 남성이 그 제품을 찾으려면 1층의 여성 전용 화장품 코너를 찾아가야 한다. 심지어 5번가 건너편에 있는 남성용품 전문점에서도 그 제품을 찾기 힘들다. 면도 크림이 립스틱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결국 많은 여자들이 자신의 남자들을 위해 면도용품을 구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접근 방식이다.
Source: 파코 언더힐 『쇼핑의 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