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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나 물건을 구매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절대적인 금액보다 사용자의 과거 경험과 기대치에 따라 비교, 탐색, 구매결정, 구매 후 평가, 재구매가 달라진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비슷한 상품에 대해서도 기대-효용평가로 인한 구매의사결정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가 분유와 물티슈를 구매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부모가 사용할 제품이 아닌 아이가 구매하는 제품이라는 점에서 구매자와 사용자가 다릅니다. 분유를 먹는 것은 아이이고, 분유를 타는 것은 부모입니다. 물티슈를 꺼내는 것은 부모이고 손이 아닌 다른 피부에 접촉하는 수혜자는 아이입니다.

자극에 민감한 아이가 사용할 제품이니 브랜드, 원산지, 제조국, 성분, 유통기한, 후기까지 꼼꼼히 자주 가는 카페에서 검색해 보고 믿을 만한 친구에게 확인도 합니다. 당장 내일 먹일 분유가 떨어진 상황에서는 새벽에 도착하는 게 중요하니 배송비를 내더라도 괜찮습니다. 물티슈는 어떨까요? 아이가 사용하는 것은 두텁고 자극이 없는 제품을 쓰지만 부모가 쓰는 것은 좀 더 얇고 저렴한 것이어도 괜찮습니다. 물티슈는 유통기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아직 남은 것이 있더라도 핫딜, 프로모션이 있을 때 미리 사둘 때가 많습니다. “어차피 살 거니까”라는 합리화 과정이 일어납니다. 서비스 구매경험에는 다이내믹스가 존재합니다. 택배비, 택시비, 하리보 젤리와 20원을 내고 구매하는 편의점 봉투로 다이내믹스를 정성적으로 비교해 봅니다.

택배비와 택시비

원하는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 직전에 발견한 ‘배송비’ 때문에 구매를 망설인 적이 있으신가요? 배송비는 3,000원인데 35,000원 제품을 구매하면서 내는 10% 이내의 비용이 구매를 중단하게 만드는 상황이 종종 있습니다. 많은 커머스가 멤버십 혜택으로 제공하는 ‘1개 구매해도 무조건 무료배송’ 또는 ‘9,900원 이상 무료배송’인 상황에서 갑자기 배송비를 내라고 하니 불쾌합니다. 꼭 필요한 제품이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상품을 추가해서 50,000원을 넘겨 무료배송 혜택을 받아냅니다. 이때 “어차피 다음 달에 필요하니까”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죠. 이 과정에서 추가적인 브라우징이 일어나고 구매행동이 일어납니다. 배송비는 배송의 대가인데, 무료배송에 학습된 소비자는 안 내도 되는 비용을 지불한다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품을 비교하고 탐색하는 과정에서, 상세페이지에서는 나오지 않던 배송비가 마지막에 나오는 상황 자체가 불쾌합니다.

택시비는 어떨까요? 택시비에 대한 부담이 늘어났습니다. 시장구조의 본질적인 문제로 인해 택시기사는 택시산업을 떠나고, 택시를 이용하는 승객은 불친절함과 비싼 요금에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택시비는 비싸지만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예상할 수 있고,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비용일 때가 많습니다. 저녁자리가 즐거워 막차시간이 다 된 상황에서 이미 택시를 타겠다고 결정했을 때부터 금요일 저녁, 강남에서 분당까지 얼마의 비용을 내야 하는지 대충 짐작했습니다. 택시를 부를 때에는 짐작보다 비싼 요금이 나와 놀랐지만 자주 타는 것이 아니며, 블루나 블랙보다는 저렴한 일반옵션도 있으니 사용자의 통제감(Sense of Control)이 작동합니다. 택시를 타자마자 집에 빠르게, 편안하게 가면서 도착예정시간까지 알 수 있으니 ‘손해를 본다’라는 느낌이 없습니다. 38,500원이 결제되었다는 문자가 하차 후에 왔지만 이미 알고 있던 금액이라 확인하지도 않습니다.

교촌치킨과 무신사

A 대표팀 경기를 보면서 치킨을 먹으려고 교촌치킨 앱을 켰습니다. 항상 먹던 오리지널과 순살을 고르고 토스로 결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이 넘지 않았습니다. 오늘 저녁엔 치킨을 먹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노랑통닭, BBQ, BHC, 굽네, 푸라닭, 네네가 아니라 한 번만 주문해도 VIP, 할인쿠폰을 쓸 수 있는 교촌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주문했던 메뉴가 만족스러워서 고민 없이 그대로 골랐습니다. 치킨은 다 맛이 좋으니까요. 이 도시에 프랜차이즈는 많고, 선택할 수 있는 사이드 메뉴도 많지만 망설이는 단계가 없었기 때문에 5만 원을 쓰면서 5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무신사에서 티셔츠를 하나 구매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처음 본 브랜드들이 많아서 브랜드를 고르는 것부터 어려웠습니다. 소재, 색상, 사이즈, 스타일, 리뷰까지 살펴보면서 10분을 보냈지만 결국 아무것도 구매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리뷰에는 정사이즈, 어떤 리뷰에는 사이즈가 작다고 하는데 전에 구매했던 티셔츠는 가장 큰 사이즈였지만 평소 입던 것보다 작았습니다. 실측을 비교해 볼 수 있었지만 줄자를 꺼내기는 너무 귀찮았고 이미 치킨이 도착했습니다. 치킨은 곧 사라지고, 옷은 구매하면 1년 넘게 입겠지만 바로 도착한 치킨이 당장 더 큰 효용이었죠. 치킨보다 옷이 더 오래가지만, 옷을 선택하면서 고민하는 시간은 너무 아깝습니다.

하리보와 비닐봉투

편의점에 가서 계산대 앞을 지나다 하리보 젤리를 마지막에 고른 적이 몇 차례 있습니다. 택배를 보내거나, 맥주를 구매하려고 찾은 곳인데 마지막에 하나 충동적으로 샀습니다. 계획에 없었지만 눈에 띄었을 때 손이 가는 제품이 있습니다. 이건 먹으면 바로 상큼함과 달달함을 느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고 모양이 귀엽기까지 하니까요. 젤리, 사탕, 아이스크림과 같은 간식은 3,000원을 내고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즉각적인 효용을 제공합니다. 이런 소비는 사용자가 꼭 필요하지 않더라도 하게 되고, 효과적인 소비라고 평가합니다.

4캔에 11,000원 수입맥주와 하리보를 계산대에 두고 아차 싶었습니다. “봉투 드릴까요?” 20원 밖에 안 되지만 봉투는 일회용품이기 때문에 구매하는 게 꺼려집니다. 백팩이 있었다면, 당근마켓 굿즈로 구매한 장바구니를 차에서 가져왔다면 안 써도 되는 돈이었습니다. 가격이 비싸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소비를 한다는 느낌이 싫었습니다. 게다가 뒤에는 이미 맥주 4캔을 안고 있는 다른 손님, 그 뒤에는 택배비용을 계산하려는 손님까지 줄을 섰습니다. “네, 봉투도 주세요”라는 말에 봉투를 꺼내 입구를 엽니다. 점원이 2캔을 넣고, 제가 바로 2캔을 담았습니다. 봉투에 물건을 담는 시간을 줄이고 싶었습니다. 뒤에 다른 고객이 오래 기다린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죠. 20원짜리 봉투 안에는 3,000원짜리 하리보가 맥주 사이에 구겨져 있었습니다. 편의점에서 나오자마자 젤리를 꺼내 하나 입에 넣으니 그래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모티콘과 다이소

카카오톡에서 이모티콘 플러스를 구독하는 비용은 2023년 6월 앱스토어 기준 6,900원, 1개만 개별 구매하면 200 초코, 3,000원입니다. 이모티콘을 구매해서 사용하는 과정을 보면 비교, 탐색의 과정이 길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필요해서 구매하기보다는 ‘좋아서’, ‘귀여워서’, ‘마음에 들어서’, ‘사고 싶어서’라는 마음에서 구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복잡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결제 직후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채팅에서 나의 감정을 이모티콘을 통해 단 2번의 터치만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쓸수록 만족감이 강화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귀여워서 구매했는데, 쓸수록 만족감이 늘어나는 재화라니 흥미롭습니다.

다이소는 장사를 잘하는 한국기업입니다. 전국 1,500개 매장에 하루 평균 방문하는 고객만 100만 명, 2021년 기준 매출은 2조 6,041억 원으로 스타벅스코리아(SCK) 보다 높습니다.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에서도 상회할 만큼 내실 있게 운영하는 기업으로 필요한 게 있는데, 저렴하게, 빨리 사고 싶을 때 찾는 대표적인 유통채널입니다. 올리브영과 함께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남았을 때 가서 구경하는 장소이기도 하죠. 그런데 다이소에 방문할 때에는 일단 상품에 대한 품질기대치가 낮습니다. 낮은 가격으로 인해 대단한 품질의 상품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3,000원 이상을 내면서 구매하려고 하면 그냥 15,000원 내고 좀 더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살까? 고민하게 됩니다. 낮은 가격이 제품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주관적인 비용보다 가격이 비쌀 때에는 차라리 다른 제품을 다른 곳에서 살까 망설이게 됩니다.